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코바야시 타키지(문호와 알케미스트) (문단 편집) == 기타 == 평상시 대사를 들어보면 유난히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나는데, 사서들 사이에서는 도피생활을 했던 과거의 기억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늘 쫓겨다니는 몸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말을 할 때 목소리를 낮출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그대로 습관처럼 굳어진 게 아니냐는 해석. 대사 중에도 실제 인물의 비극적인 최후를 염두에 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예를 들면 유애서 맵 출격시의 꼭 돌아오겠다는 말이나, 도서관 대사 중 자신이 쫓겨다니던 때보다 훨씬 좋은 시대라고 하는 말 등. 일본 사서들 일각에서는 실제 인물과 작품에 대해 알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상을 받게 되는 캐릭터라는 평도 있다. 타니구치 코헤이 프로듀서[* 기모노 차림의 사진이 많이 알려진데다 [[대머리]]여서 그런지 사서들 사이에서는 '스님(和尙)'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가 2017년 12월 1일자 트위터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타키지의 캐릭터는 '사상가'보다는 '문학청년'으로서의 모습에 초점을 두고, 스승으로 여겼던 나오야나 다른 프롤레타리아 작가인 시게하루, 스나오와의 '인연'을 중심으로 묘사했다고 한다. 기본 복장에 [[벨트]]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 편인 프롤레타리아 3명 중에서도 유난히 벨트를 많이 착용하고 있는데다[* 허리 벨트 외에도 [[부츠]]에 포함된 것까지 합쳐서 8개를 더 차고 있다.] 전체적으로 꽉 조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한데, 일각에서는 복장에 포함된 이 벨트가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공산주의를 비롯한 각종 사상에 대한 정부의 탄압을 상징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있다. 겨울 한정 도서관 대사가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다소 무거운 느낌이 드는 것은 실제 인물의 사망일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날이 우연히도 나오야의 생일과 같은 날[* 이 날은 이시카와 타쿠보쿠의 생일이기도 해서 일각에서는 나오야와 타쿠보쿠, 타키지를 한데 묶어 '2월 20일조'로 부르기도 한다.]이어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서들은 나오야의 생일 회상을 보다가 '나오야는 자기 생일에 아끼던 제자가 처참하게 죽은 것을 알고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라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고 하기도 한다. 실제로 시가 나오야는 자신의 일기에서 타키지의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몇 차례 언급하고 있는데, 사건 발생 5일 후 쓴 일기에서는 타키지가 자신의 생일[* 나오야의 50번째 생일이었다고 한다.]에 체포되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실로 마음이 편치 못하다. 비록 단 한 번 만났을 뿐이었지만 나는 코바야시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고 그가 마음에 들었건만, 암담한 기분이다."'''라고 술회했다. 당시 일본 문단이 타키지의 죽음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던 와중에 나오야만이 유일하게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낸 것이다. 게다가 개인적인 일기나 편지조차도 모조리 특고의 검열 범위에 있었던 그 시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나오야가 무사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 그리고 타키지가 죽은 뒤에도 나오야는 계속 타키지를 높이 평가했고, 전후에 발간된 '코바야시 타키지 전집'의 추천사를 쓰는 한편 문학비 건립에도 관여했다고 한다. 나오야가 보낸 편지의 내용은 실제의 타키지가 '나오야의 관점에서' 자신의 소설에 대해 기탄 없이 비평해 달라고 청한 편지와 그에 대한 답장에서 유래한 듯하다.[* 치바현 아비코시 소재의 시라카바 문학관에 실물 편지가 소장되어 있다.] 이 편지에서 비평한 소설은 '오르그'와 게 가공선', '1928년 3월 15일'의 세 작품으로, '오르그'에 대해서는 특별한 인상을 받지 못했다고 평한 반면 '게 가공선'과 '1928년 3월 15일'에 대해서는 사실적인 묘사를 높게 평함과 동시에[* 특히 가장 인상깊게 읽은 작품으로 게 가공선을 꼽았다.] 작품에 내재된 약점을 짚어 주기도 했다. 작가로서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격려하는 한편으로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한계와 약점을 다소 엄격하게 지적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키지는 이 편지를 받고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나오야도 타키지 사후에 당시를 회상하며 쓴 글에서 자칫 불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한 나오야의 태도를 감안하면 단순히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타키지의 문학 자체를 부정하는 의미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자신의 비평을 싫은 소리 한 번 없이 겸허하게 수용하는 모습에서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라는 것을 느꼈고, 덕분에 프롤레타리아 작가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이 누그러졌다[* 나오야는 평소 사회주의를 비롯해서 각종 '사상'에 대해 부정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었는데, 당시 나라의 자택에 드나들면서 사회주의를 거의 강요에 가깝게 설파했던 노동운동가와 학자, 작가들에게 질린 탓에 프롤레타리아 작가들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타키지는 자신의 사상을 강요하는 등의 언동을 전혀 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경애하는 작가로서 나오야를 대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만남은 상당히 훈훈한 분위기였다고 한다.]는 취지로 술회하기도 했다.[* "여기(나라)에 왔을 때도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면서 조금도 먼저 변명하거나 비판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내가 하는 말을 대부분 긍정하고 있었다. 그 긍정이 내 입장에서의 긍정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훌륭한 인품이라고 생각했고 완전히 어른이 다 됐다고 느꼈기에, 그때까지 갖고 있던 프롤레타리아 작가라는 이들에 대한 생각을 바꿔 준 사람이었다."] 또한 생전의 타키지는 평소 자신의 소설이 많이 부족하다고 자평했고 나오야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이를 언급하고 있는데, 나오야에게는 이런 모습이 작가로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성실함으로 보여 좋은 인상을 받았던 듯하다.[* 똑같이 나오야를 동경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문호와 알케미스트)|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타키지는 자신의 소설에 대해 부족하다고 평하기는 했지만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는 않은 반면, 류노스케는 나오야 앞에서 대놓고 자신의 소설을 실패작이라고 폄하하는 등 자기부정이 심하다.] 이런 이유로 [[2차 창작]]에서도 이와 관련된 창작물들을 간혹 볼 수 있다. 주로 타키지가 원고를 써 가면 나오야가 그것을 보고 첨삭을 해 준다거나 원고에 대해 비평을 해 주는 식. 무샤의 편지나 가을 한정 대사 등에서 나오는 [[수채화]]에 관한 이야기는 실제 인물이 그림을 좋아했다는 이야기에서 따 온 것으로 보인다. 학생 시절부터 문학을 비롯해 그림 등 다양한 창작 활동에 몰두했고, 특히 상업학교 재학 당시에는 화가를 지망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워낙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수채화나 유화를 그리다가 밤을 새는 일도 허다했다고.[* 모친 세키의 회고에 따르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 외에도 시간이 나면 화판을 들고 사생을 나가는 등 워낙 이런저런 창작 활동을 하느라 쉴 틈이 없어서, 가족들조차 평소 타키지가 몇 시에 잠을 자는지 모를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큰아버지의 만류로 결국 그림을 접게 되었는데, 모친의 회고에 따르면 '그림 그리는 것은 취미 장사나 마찬가지'라며 혼이 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림 그리는 것을 못마땅해한 것이 아니라, 큰아버지가 데려와서 보살폈던 타키지의 형[* 자신 때문에 집안이 망해서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동생 부부(타키지의 부모)가 힘들게 살아가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로 장남을 오타루로 데려와 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키고 있었다.]이 13살에 급성 뇌막염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공연히 어린 조카를 데려와서 죽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에 더해, 자칫 타키지도 건강이 나빠져 형처럼 일찍 죽을까봐 걱정하는 마음에 만류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고문|다른 이유]]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지만. 일본 사서들 사이에서는 인기 캐릭터 반열에 속하는지, 트위터 유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모 인기 투표에서는 시마자키 도손이나 시가 나오야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적이 있었으며 2017년 11월에 발매된 1주년 기념 독본의 권내 부록인 핀업 브로마이드에 들어갈 캐릭터 3명을 선정하는 앙케트에서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나 다자이 오사무, [[이즈미 쿄카(문호와 알케미스트)|이즈미 쿄카]] 등을 제치고 모델로 선정되기도 했다.[* 나머지 2명은 시가 나오야와 [[토쿠다 슈세이(문호와 알케미스트)|토쿠다 슈세이]].] 레어리티가 낮아서 비교적 얻기 쉽다는 점도 있고[* 다만 유혼서로 얻을 경우 키쿠치 칸과 함께 잠서시간이 30분 미만이라는 점 때문인지 다른 무지 레어리티의 문호들에 비해서는 체감 출현 확률이 약간 낮다.], 겉보기에는 무뚝뚝하고 삐딱해 보이지만 본질은 곤란해하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 상냥한 성격이라는 캐릭터성에, 모티브가 된 실제 문호의 기구한 삶에서 유래한 게임 내 요소들이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데가 있어서인 듯.[* 고문의 여파로 내장이 파열되고 오른손 손가락이 손등 방향으로 꺾이는(다시는 글을 쓰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등 워낙 참혹하게 사망했기 때문에 그 당시에도 국가 권력에 의한 문인 학살 사건으로 알려져 국내외로 큰 파문이 일었고, 타키지의 죽음에 대해 [[위키백과]] 같은 곳에서도 아예 '''대놓고 학살 내지는 참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다. 실제로 타키지는 특고에게 체포된 당일에 3시간 동안 계속 고문을 당하고 이 여파로 7시간 뒤 죽었기 때문에, 특고가 정보를 캐내거나 전향을 유도할 의도가 있었다기보다는 눈엣가시였던 타키지에게 명백하게 살의를 품고 있었다는 견해가 많다. 또한 앞 각주에서 언급된 필살오의 대사의 유래를 알고 난 이후부터 이 대사를 들을 때마다 너무 짠하다, 눈물난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서들이 많다.] 여기에 대식가 속성까지 있다보니 타키지 팬들 일각에서는 반 농담조로 비록 사서와 식모로 투잡을 뛰면서 뒷바라지하는 한이 있더라도 타키지는 그저 많이 먹고 따뜻한 잠자리에서 푹 자면서 하고 싶은 일[* 본업인 글쓰기나, 한때 몰두했었던 수채화를 다시 시작한다거나.]을 마음껏 했으면 좋겠다, 전력으로 밥솥 앞에서 주걱 들고 대기하겠다(...)는 등의 이야기가 돌기도 한다. --키는 큰데 하도 말라서 많이 먹고 살 좀 찌기를 바라는 사서들도 있다 카더라-- 또한 평상시의 모습과 이벤트 등에서 나타나는 모습 사이에 알게 모르게 갭이 있는 편이라서[* 특히 먹는 게 얽혔다 싶으면 대사 등에서 묘하게 어린 티가 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2018년 2월 28일 업데이트 이후 모바일판의 알림 메시지가 "우리의 새로운 싸움이 시작되는 건가.....'''밥 먹고 나서 준비해야지.'''"라거나, 2018년 4월 25일부터 5월 23일까지 한정으로 산책에서 선물할 수 있는 기호품인 '카시와모치'를 주면 '''혹시 뱃속에서 나는 소리가 들렸냐'''고 하는 등.] 사서들 사이에서는 스승인 나오야와 함께 [[갭 모에]] 담당이라는 인식이 있는 모양. --전방부주의 스승과 식신 제자-- 그런가 하면 약간 [[일 중독]] 기미가 있는지, 문호들의 일상 이벤트에서 기념품을 선물한 뒤 볼 수 있는 회상에서 지난 1년 동안 가장 즐거웠던 일을 물었을 때 온천 여행[* 느긋한 온천 모임 이벤트] 이야기를 하면서 그동안 침식자와 싸우느라 꼬박 하루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느긋하게 있어본 적이 없다고 했을 정도. 이 온천 여행도 밤낮없이 일만 하는 타키지와 시게하루를 위해 사서[* 직접 여행 계획을 짜는 등의 관여는 하지 않았지만 대신 마음 편히 여행을 다녀올 수 있도록 업무량을 줄여 주었다.]와 호리 타츠오, 도쿠나가 스나오가 휴가 차원에서 준비했던 것으로, 이는 실제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성향이나 원본 문호의 이력[* 어린 시절부터 하층 노동자 계층의 사람들을 자주 접했던 경험이라든가, 은행원으로 일하는 와중에 종이와 연필을 늘 가지고 다니면서 틈틈이 글을 쓰곤 했다는 에피소드 등.]을 반영한 설정으로 보인다. [[일본 공산당]]이 발행하는 [[아카하타]]의 기사에 소개된 일이 일부 부녀자들로 인해 논란이 되었다. 자세한 정황은 [[문호와 알케미스트#s-8.1|여기]]를 참조. 다만 해당 문서에서도 언급되었듯 전체적으로는 부녀자들의 주장에 대해 위화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억지 논리라는 비판이 많은 편이다. 조사임무 이벤트 '이상한 다과회'[* 이벤트 정식 공지가 올라오기 전에 운영측의 불찰로 모바일판에 잠시 공지가 올라왔다 바로 삭제된 일이 있었는데, 당시 모바일판 공지 캡처 스샷을 본 사서들 사이에서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든 낚시 이미지가 아니냐는 소문이 아주 잠깐 돌기도 했다. 하지만 공식 트위터에 실제 이벤트 공지가 뜨고 타키지와 [[에도가와 란포(문호와 알케미스트)|에도가와 란포]], [[나카하라 츄야(문호와 알케미스트)|나카하라 츄야]]의 이벤트 추가 의상(란포=하트 여왕, 츄야=[[매드 해터]])이 공개되자 진짜였냐며 뒤집어지는 사서들이 한둘이 아니었다고(...).]의 보상인 빨간 모자 의상에 [[늑대]]귀와 [[꼬리]]가 달린 모습이 사서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평소의 타키지를 생각하면 은근히 갭이 있는 배역이다보니[* 이미지도 그렇지만 아무래도 문학적 상상력보다는 현실적인 색채가 짙은 편인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벤트 주역 캐릭터들 중 가장 이색적인 역할 배분이라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츄야와의 이벤트 회상을 보면 아무 의미 없는 시나 이야기의 어디가 재미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였고, 츄야는 그렇게 진지하게 물어봐도 별 수 없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이벤트 의상 이미지가 공개되자 전반적으로 '''귀엽다'''는 호평이 많았고, 설마했는데 꼬리까지 달려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놀라는 반응도 있었으며 이벤트 후반기인 2017년 10월 28일에는 담당 성우인 코니시 카츠유키가 트위터에 직접 [[https://twitter.com/KCONIQ/status/924098490396958721|의상 획득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코니시 카츠유키는 이후 12월 1일에 올린 타키지의 생일 축하 트윗에서 소장 이벤트 한정 의상 추가를 내심--이 아니라 많이-- 기대하기도 했고, 2018년 발매 예정인 공식 굿즈인 아이폰 케이스 중 타키지 모델에 항상 목에 걸고 다니는 고글과 함께 [[게]]가 들어있는 점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헌데 이 늑대귀와 꼬리가 달린 의상이 사실은 할머니를 잡아먹은 늑대를 '''때려잡아서 그 가죽으로 만든(!)''' 것이라[* 이벤트 회상에서 직접 언급되며, 하트 여왕(란포)도 아예 대놓고 '늑대소년'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에 더해 할머니는 늑대에게 잡아먹혔을 때의 쇼크 때문에 '''아프던 게 씻은 듯이 나아버렸다'''고(...). [[로알드 달]]의 --동심파괴-- 패러디 소설 <백만장자가 된 백설공주>에서 빨간 모자가 늑대를 총으로 쏘고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드는 내용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화가 나면 가장 무서울 것 같은 캐릭터로 타키지를 거론하기도 한다(...). 프롤레타리아 3명 중 유일하게 자신의 작품이 유애서로 등장하지 않았다가[* 시게하루는 일반 유애서의 가장 첫번째 권(い단의 '노래의 이별'), 스나오는 이벤트 한정이지만 '태양이 없는 거리'가 유애서로 나왔다.] 대표작 '게 가공선'이 2018년 2월 21일 업데이트로 추가된 주말 유애서의 2번째 권으로 나왔다. 난이도는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별 4개[* 실제 게임에서는 유애서의 난이도가 책 모양 아이콘으로 표시된다.]. [[요시이 이사무(문호와 알케미스트)|요시이 이사무]] 추가 당시 공식 트위터에 요시이의 정보가 공개되었을 때 뜬금없이 엮인 일이 있었다. 즉슨 요시이의 캐릭터 외형이 언뜻 보면 타키지와 닮은[* 헤어스타일이 많이 유사하고, 공식 독본에서 공개된 요시이의 키가 180cm으로 타키지와 거의 엇비슷하다.] 데가 있어서 사서들 사이에서 요시이를 두고 우스갯소리로 '''타키지 아버님 아니시냐'''는 드립이 돌았던 것(...). [[분류:문호와 알케미스트/캐릭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